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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부문-우수상] 나의 요양보호사 분투기

돌봄희망터 2015-10-23 16:37:00 조회수 2,701
 
 
나의 요양보호사 분투기
 
 
요양보호사 이경자
 
 
   이제 만 3년차 요양보호사인 나는 그동안 방문요양서비스로 8명의 어르신과 함께 했다. 길게는 2년여, 짧게는 3주 정도의 미운정 고운정을 함께 한 어르신들 한분한분 내 생애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봉사정신으로 물불 가리지 않던 처음 1년여는 힘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이 일을 해야 하나?’를 반문하면서 보낸 중간 2년차는 무덤덤하고 더디기만 했다.
 
   그러던 때에 ‘치매전문요양보호사교육’을 받고 현재까지는 나름의 보람을 느끼면서 또 ‘이 일은 고령화 사회에 누군가 해야만 할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거야’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지낸다. 덕분에 주변으로부터 ‘5등급 전문 요양보호사’란 명성(?)과 닉네임을 얻었다.
 
   처음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때의 순수한 약속을 떠올리며 3년여 만난 어르신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려 본다. 사랑도 첫사랑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던가. 요양보호사로서 첫사랑을 나눈 어르신과의 인연은 잊을 수가 없다. 30년 넘게 가족 없이 오롯이 혼자 살면서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기분변화가 심했던 어르신. 요양보호의 제공범위를 벗어난 요구와 도둑 누명같은 부당한 대우를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재가센터의 중재로 일을 이어가면서 좋은 경험을 쌓았던 것 같다.
 
   낙상 사고로 척추압박골절이 되어 1년 넘게 와상상태였고 청각장애까지 있던 어르신이 있었다. 의부증이 있던 그분은 첫날 보호자인 남편과 인사를 나누었단 이유로 ‘우리 아빠랑 인사하지 말라’는 명령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와상상태의 어머니를 위해 목욕, 식사, 운동 도움을 능숙하게 해내던 나를 믿은 두 딸의 중재로 좋은 관계로 발전되나 했는데... 어르신의 남편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면서 2달이 채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해고를 했다. 어르신의 남편은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그래도 몸도 마음도 아픈 당신의 아내를 이해해 달라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나는 졸지에 당한 일이었지만 나의 해고로 어르신의 마음이 편해지고 그 가정에 평화가 온다면 그것도 넓은 의미의 좋은 돌봄일 수 있겠다고 자위하며 그간 감사했다는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요양보호의 주체가 되어야할 요양보호자와 수급자. 보호자는 뒷전이고 그동안 실질적인 케어 주체였던 딸의 요양보호사를 파출부 정도로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간섭으로 요양보호서비스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던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도둑누명에 불륜을 의심받고 파출부 취급을 받는 등의 정서적인 벽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척추만곡증과 경도치매였던 김○○ 어르신과의 만남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르신은 늘 주머니에 사탕을 넣어두고 ‘힘들지’라며 달콤한 사랑을 주셨다. 완전 와상상태의 손녀딸을 20년 넘게 돌보느라 청춘을 다 보냈고 영화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며 눈물짓는 어르신께 문화회관의 무료영화를 보며 생애 최초의 추억을 만들어드렸다. 5등급이 신설되면서 부득이하게 그만두게 되었지만 사탕 닮은 어르신의 달콤한 정은 지금도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후 ‘좋은 돌봄’이란 화두를 던지며 처음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통해 교육을 받을 때의 그 순수했던 다짐을 되새기면서 5등급 어르신을 위한 인지활동형 방문요양서비스를 했다. 그 때 만난 어르신들은 과거에 세련된 매너와 고고한 지성을 자랑했을 어르신들이었다. 석 달이 넘도록 방문을 했지만 늘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조금 높은 톤으로 인사를 하면 ‘아 내가 깜빡했네요.’ 라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처음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원치 않아서 라포형성이 되기까지 곡절은 많았지만 나중엔 아주 훌륭한 요양보호사라고 인정해주셨다. 재가센터에서 제작한 일일점검표와 워크북을 기본으로 하고 색종이 접기, 식물 가꾸기, 요리하기, 클레이점토 만들기, 색칠하기, 퍼즐 맞추기, 노래 부르기, 운동 등 인지활동형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다. 그때 활동했던 사진을 몇 장 실어본다.
 
   지금 현재 만나고 있는 어르신은 언니같은 어르신 두 분이다. 년월일은 물론 반찬하기 등의 가사활동을 거의 잊어버린 어르신. 주변사람들에게 나를 친척동생이라고 소개하고 프로그램에 집중해서 열성적으로 따라하신다.
 
   어떤 때에는 ‘자식보다 요양보호사가 제일 좋고 그 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하다가도 뭐가 없다 싶으면 ‘요양보호사가 안 가져갔어요?’라고 묻는다. 그럴 때면 같이 찾아보고 찾을 때도 있지만 난감하기 그지없다.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도둑일지 모른다는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가 늘 나에게 숙제로 남는다.
 
   또 한 분은 어르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은 언니이다. 중기 치매고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이 많던 이 분과의 빠른 라포형성을 위해 친정어머니의 제자역할, 수급자에겐 동생 역할 연기가 나에게 주어졌다. 처음엔 어색한 내 발연기에 실소가 나왔지만 이제는 능숙한 연기를 선보이며 [요양보호]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잘 하려고 노력하며 즐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자랑했을 그녀들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분들이다. 호칭부터 남달랐던 두 분과는 이제 연기가 아닌 언니동생 사이가 되려고 여전히 고군분투중이다.
 
   오늘도 치매를 친구삼은 언니 두 명과 분투하며 더 이상 그녀들의 삶의 밑거름이 지워지지 않길 바라며 평온을 기도한다. 그래도 내겐 우수요양보호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겨준 너무 이쁜 그녀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양보호사로 활동한지 만 3년, 내가 터득한 좋은 돌봄이란 수급자(가족 포함)와 요양보호사가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요양보호사는 수급자의 개별성을 인정해주면서 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자기주도적 참여교육에 능동적으로 참가하여 직업적 소양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서로 만족도 높고 소통과 공감을 겸비한 좋은 돌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나 또한 그동안 만난 어르신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해본다. 만약 좋은 돌봄이 아니었다면 그 원인은 나에게서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양보호사인 내가 먼저 변하는 것이 좋은 돌봄의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주면 한여름 더위의 절정인 8월이다. 맘놓고 여름휴가도 갈 수 없는 게 요양보호사의 길이지만 좋은 돌봄의 의미를 새기고 ‘나는 요양보호사다’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발바닥이 아프도록 뛰어야겠지.